
파일 다운로드나 스트리밍을 시작할 때, 네트워크가 충분히 빠른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초반 속도가 서서히 올라가는 현상을 경험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이는 회선 품질이나 서버 성능 문제가 아니라, TCP 자체가 의도적으로 초반 전송 속도를 제한하는 설계 때문입니다. 그 핵심 메커니즘이 바로 TCP Slow Start입니다. 이 글에서는 TCP Slow Start가 왜 존재하며, 왜 네트워크 초반 속도를 제한할 수밖에 없는지 구조적으로 설명합니다.
TCP는 왜 처음부터 전력을 다하지 않는가
TCP는 신뢰성을 보장하는 전송 프로토콜입니다. 단순히 데이터를 빠르게 보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패킷 손실 없이
네트워크 혼잡을 유발하지 않고
상대방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전송하는 것이 핵심 목표입니다.
문제는 연결이 처음 시작되는 순간에는 네트워크 상태를 전혀 알 수 없다는 점입니다. 대역폭이 넉넉한지, 중간 경로에 병목이 있는지, 패킷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지에 대한 정보가 없습니다. 이 불확실성이 TCP Slow Start의 출발점입니다.
Slow Start의 기본 개념
TCP Slow Start는 연결 초기에 전송량을 매우 작은 값에서 시작해, 성공적으로 전송이 확인될 때마다 전송량을 점진적으로 늘리는 방식입니다. 여기서 전송량은 혼잡 윈도우(cwnd)라는 개념으로 관리됩니다.
처음에는
아주 적은 패킷만 전송
응답(ACK)을 기다림
문제가 없으면 전송량을 증가
이 과정을 반복
이렇게 네트워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스스로 탐색합니다.
‘느리다’는 이름이 붙은 이유
Slow Start라는 이름 때문에 전송 속도가 선형적으로 조금씩 증가한다고 오해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지수적으로 증가합니다. 전송이 성공할 때마다 혼잡 윈도우가 두 배에 가깝게 늘어납니다.
다만 시작점이 매우 작기 때문에, 사용자는 초반에 속도가 느리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이 구간은 네트워크를 시험하는 단계이지, 최대 속도를 내기 위한 단계가 아닙니다.
초반 속도를 제한하지 않으면 생기는 문제
만약 TCP가 연결 직후부터 네트워크 최대 대역폭을 가정하고 대량의 데이터를 전송한다면, 다음과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중간 라우터 버퍼 초과
패킷 드롭 급증
재전송 폭증
전체 네트워크 혼잡
이 상황은 단일 연결의 문제를 넘어, 같은 네트워크를 사용하는 다른 트래픽까지 영향을 주는 혼잡 붕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TCP는 이런 상황을 원천적으로 방지하기 위해, 초반 속도를 의도적으로 낮추는 전략을 선택했습니다.
ACK 기반 학습 구조의 한계
TCP는 ACK를 통해 네트워크 상태를 간접적으로만 추정합니다. ACK가 제때 도착하면 “아직 여유가 있다”고 판단하고, 지연되거나 손실되면 “한계에 도달했다”고 판단합니다.
초기에는 이 판단에 필요한 데이터가 거의 없기 때문에,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습니다. Slow Start는 정보 부족 상태에서의 안전 장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RTT와 Slow Start의 관계
Slow Start는 RTT, 즉 왕복 지연 시간의 영향을 크게 받습니다. 혼잡 윈도우 증가는 ACK 수신을 기준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RTT가 길수록 전송량 증가 속도도 느려집니다.
이 때문에
지연 시간이 긴 네트워크
위성 통신
해외 서버 접속
환경에서는 초반 체감 속도가 더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혼잡 회피 단계로 넘어가는 시점
혼잡 윈도우가 일정 임계값에 도달하거나, 패킷 손실이 감지되면 TCP는 Slow Start를 종료하고 혼잡 회피 단계로 전환합니다. 이 단계에서는 전송량 증가 속도가 훨씬 완만해집니다.
즉, Slow Start는
무작정 느리게 유지되는 상태가 아니라
네트워크 한계를 빠르게 찾기 위한 초기 가속 구간
에 가깝습니다.
현대 네트워크에서도 여전히 필요한 이유
광대역 네트워크와 고속 회선이 보편화되었음에도 Slow Start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습니다. 이유는 네트워크의 가장 약한 고리가 전체 성능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빠른 회선이라도
중간 라우터
공유 구간
무선 구간
서버 측 큐
어느 한 곳에서라도 병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Slow Start는 이 불확실성을 감안한, 가장 안전한 초기 접근 방식입니다.
사용자 체감과 TCP 설계의 차이
사용자 입장에서는 “처음부터 빨리 받아지면 좋겠다”라고 느끼지만, TCP 설계 관점에서는 “처음부터 안전하게 시작해야 한다”가 더 중요합니다. 이 차이가 초반 속도 제한이라는 형태로 드러납니다.
정리
TCP Slow Start가 네트워크 초반 속도를 제한하는 이유는 성능 부족이 아니라 의도적인 안전 설계입니다. 연결 초기에 네트워크 상태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작은 전송량에서 시작해 점진적으로 한계를 탐색하는 구조를 선택한 것입니다. 이 과정 덕분에 TCP는 수많은 환경에서도 안정적으로 동작할 수 있으며, 네트워크 전체의 혼잡을 방지합니다. 결국 Slow Start는 느림의 상징이 아니라, 신뢰성과 공존을 위한 출발 단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